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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은 짧고 넌 당연하지 않아
#I_wanna_rock_with_you
스텀핑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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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시작은 우스울 정도로 사소했다. 저택의 고요한 오후, 레나토의 서재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레나토는 복잡한 서류 더미에, 티케는 두꺼운 미술사 원서에 코를 박고 있었다. 문제는 레나토가 무심코 티케의 책갈피를 다른 페이지에 옮겨 꽂으면서 시작되었다. 그저 붉은 머리카락과 닮은 색의 리본이 예뻐 보여서,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에 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그것이 하필 그녀가 몇 시간 동안 공들여 분석하던 중요한 도판의 한가운데였다. 티케는 미간을 찌푸렸고, 레나토는 대수롭지 않게 사과했다. 평소라면 가벼운 투정으로 끝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둘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며칠 밤낮으로 이어진 조직 내의 골치 아픈 문제들로 레나토는 예민해져 있었고, 티케 역시 다가오는 히트 기간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Non è niente. (별거 아니야.) 레나토의 가벼운 말에 티케의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별거 아니라니요? 지금 몇 시간을 본 건데. 서운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레나토는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Mi dispiace, Tesoro. (미안해, 자기야.) 다시 찾으면 되잖아. 그 무심한 말투가 기어코 불씨를 키웠다. 지금 당신 태도가 더 문제인 거 알아요? 사과를 그런 식으로 해요? 티케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언성이 높아지자 레나토의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패였다. 평소의 나른함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페로몬이 미세하게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서재의 묵직한 공기를 갈랐다.

그럼 어떤 태도를 원하는데? 무릎이라도 꿇을까? 비꼬는 듯한 말이 여과 없이 튀어나왔다. 뱉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티케의 연두색 눈동자가 상처와 분노로 일렁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나토 역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압도적인 신장 차이에도 그녀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짜증과 피로가 뒤섞인 감정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레나토가 언성을 높여 무어라 쏘아붙이려 입을 여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콩. 콩. 콩.

갑자기, 잔뜩 화가 난 얼굴의 티케가 작은 발로 마룻바닥을 세차게 구르기 시작했다. 제법 힘을 실어 내딛는 소리였지만, 카펫 위에서는 그저 둔탁하고 귀여운 소리로 울릴 뿐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온몸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며 바닥을 콩콩 내리찍었다. 그 모습이 레나토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어떤 영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시골 저택의 정원에서 봤던, 화가 잔뜩 난 채 뒷발로 땅을 쿵쿵 내리치던 작은 회색 토끼.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거나, 무언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경고의 의미로 보이던 그 행동. ‘스텀핑’이라고 부르던가.

순간, 레나토의 머릿속 모든 회로가 정지했다. 방금 전까지 그를 짓누르던 짜증과 피로, 분노 같은 감정들이 거짓말처럼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으며,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의 시선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티케의 얼굴이 아닌, 여전히 멈추지 않고 바닥을 구르는 그녀의 작은 발에 고정되었다. 하얀 발목, 붉은 실내화, 그리고 콩콩거리는 그 움직임. 그 모든 것이 ‘화가 난 토끼’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겹쳐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뾰족하게 날을 세우던 그녀가, 순식간에 솜털 보송한 귀와 동그란 꼬리를 단 작은 동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레나토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지금 웃음을 터뜨렸다가는 이 사소한 다툼이 걷잡을 수 없는 전쟁으로 번질 게 뻔했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척하며 실낱같이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마른세수를 해야만 했다. 세상에. 나의 마녀, 나의 아름답고 위험한 티케가. 토리노의 밤을 쥐고 흔드는 마피아 보스인 자신을 상대로, 지금 온 힘을 다해 발을 구르며 화를 내고 있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귀여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콩콩거리던 발구름은 멈췄지만,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레나토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의 눈에는 조금 전의 짜증이나 분노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커다란 몸을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직도 분노로 붉게 상기된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Piedi freddi? (…발 아프겠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과도, 변명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걱정이었다. 세게 발을 굴렀으니 아프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원초적인 염려.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에 티케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레나토는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뺨을 감싼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품에 가볍게 안았다.

Mi dispiace. (미안해.) 그는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Sono stato un coglione. (내가 멍청했어.) 평소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거친 단어를 써가며, 그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의 품에 안긴 티케가 작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화가 다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레나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긴 채, 그녀의 머리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방금 전, 화가 난 토끼처럼 발을 구르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또다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는 꾹 참았다. 대신 그는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으며,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La prossima volta, dimmelo a parole, amore mio. Il tuo stomping è troppo carino, non riesco a prenderti sul serio. (다음부터는 말로 해줘, 내 사랑. 네 발구르기는 너무 귀여워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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