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모습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 작고, 따뜻하고, 부드러웠지. 내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면서, 나만 보고 싶을 만큼. 세상 그 누구도 너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게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탐이 났다고. ...이제 그만 울어, 나의 아내. 너의 눈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약해지는 무기라는 걸 알면서 왜 자꾸 쓰는 거야.
토리노의 오후는 나른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방 안의 먼지들을 금가루처럼 반짝이게 만들었고, 거실 한쪽에 놓인 고급 오디오에서는 조용한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이 적막을 깨뜨린 것은, 레나토의 서재에서 터져 나온 요란한 소리였다. 쨍그랑, 하고 무언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오래된 양피지 뭉치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지극히 당황스럽고 황당한 남자의 낮은 탄성. 모든 소동의 중심에는, 마피아 보스 레나토 코르보가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산산조각 난 작은 유리병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고, 정체불명의 액체가 스며든 고서 한 권이 기분 나쁜 얼룩을 남긴 채 펼쳐져 있었다. 사건은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경매장에서 다른 고미술품에 덤으로 딸려온, 먼지 쌓인 상자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봉랍 병. 그는 그것이 잊혀진 시대의 희귀한 향수일 것이라 지레짐작했고,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을 선물하고 싶다는 로맨틱한 생각에 사로잡혔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로맨틱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난장판이 아닌, 책상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곁에서 르네상스 미술사에 대한 열띤 강의를 펼치던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 티케가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 그러나 지금 그곳에는 티케 대신, 상체만 한 커다란 꼬리를 가진, 온통 붉은 털로 뒤덮인 작은 동물이 앉아 있었다. 마치 잘 익은 라즈베리 같은 털 색깔, 쫑긋하게 선 커다란 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다는 듯이 잔뜩 부풀어 오른 하얀 솜털 뺨. 영락없는 레서판다였다. 순둥한 얼굴에 새침한 성격을 가진, 먹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은 제 성질을 못 이겨 위협한답시고 두 앞발을 번쩍 드는, 그가 평소 티케를 보며 남몰래 떠올렸던 바로 그 동물. 레나토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 앞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했다. 그는 미간을 짚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직의 존망이 걸린 회의에서도,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이토록 어지러웠던 적은 없었다.
뀨우-! 뀨뀨뀨! 뀨아아악! 작고 앙증맞은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롭고 분노에 찬 항의가 책상 위에서 터져 나왔다. 붉은 털 뭉치, 아니 티케는 잔뜩 화가 난 듯 꼬리를 파르르 떨며 앞발로 책상을 탕탕 내리치고 있었다. 그 작은 발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행동에는 명백한 분노와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비록 지금은 알아들을 수 없는 뀨뀨- 소리로 변해버렸지만, 레나토의 귀에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레나토!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 당장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당신 머리 뜯어버리겠어요!’ 아마 평소의 그녀라면 이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창의적인 욕설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는 눈앞의 작은 생명체가 내뿜는 맹렬한 기세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작고 귀여운데, 무섭다. 이 모순적인 감정이 그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레나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손을 내리고,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보다 흥미롭다는 기색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의자를 끌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팔을 괴고, 맹렬하게 자신을 향해 항의의 소리를 내지르는 작은 레서판다를 가만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분노로 반짝이는 연두색 눈동자. 평소 그녀의 눈과 똑같은 색이었다. 화가 나면 살짝 씰룩이는 코. 쫑긋거리며 주변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려는 듯한 커다란 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풍성하고 탐스러운 붉은 꼬리.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더 잘 어울리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더 날카로운 ‘뀨아악!’ 소리가 그의 고막을 찔렀다. 작은 앞발이 이번에는 책상 위 깃펜을 그에게로 밀어 넘어뜨리려 애쓰고 있었다. 명백한 공격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마, 내 사랑. 지금 그 모습도 충분히 위협적이니까. 그는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물론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걸려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손가락을 향해 날아왔다. 콱! 하고 물리는 시늉을 했지만, 차마 세게 물지는 못하고 그의 손가락을 입안에 넣은 채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위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그는 킥킥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빼는 대신, 오히려 그녀의 입안에서 손가락을 살살 움직였다. 작은 혀와 여린 입천장을 간질이는 그의 장난에, 티케는 당황한 듯 그를 물고 있던 입에 힘을 풀었다. 거 봐, 너도 싫지는 않은 거잖아. 그는 재빨리 손을 빼내, 이번에는 그녀의 이마를 부드럽게 긁어주었다. 분노로 쫑긋 섰던 귀가 조금씩 내려가고, 파르르 떨리던 꼬리의 움직임도 차츰 잦아들었다.
그는 잠시 동안,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붉은 털은 보기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는 손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작고 따뜻한 생명의 온기에, 그리고 그 생명이 온전히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에 기묘한 충족감을 느꼈다. 평소에도 그녀를 품에 안고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의 이 감각은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만족감을 주었다. 온몸이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작고 소중한 존재.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품 안에 완벽하게 가둘 수 있는.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점점 더 짙고 농염하게 변해갔다. 그는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 이 귀여운 상황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던 티케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뀨…’하고, 이전과는 다른 슬픔과 원망이 담긴 소리를 냈다. 그렁그렁한 연두색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보였다. ‘나 이제 어떡해요?’ 라고 말하는 듯한 그 애처로운 표정에, 레나토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장난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한편에 있는 작은 냉장고로 향했다. 그 안에는 언제나 티케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들이 있었다. 그는 잘 익은 딸기와 블루베리가 담긴 작은 접시를 꺼내, 다시 그녀의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접시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일단 뭐 좀 먹고 얘기하자, 응? 배고프면 더 화만 나잖아. 당신이 좋아하는 딸기야.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
티케는 잠시 망설이는 듯, 접시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달콤한 딸기 향의 유혹은, 레나토에 대한 원망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접시로 다가가, 작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빨갛고 커다란 딸기를 앞발로 콕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작은 입으로 열심히 딸기를 먹는 모습을 보며, 레나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행복하게 딸기를 먹는 그녀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의 아내, 그의 마녀, 그의 모든 것. 지금은 비록 붉은 털을 가진 작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그리고… 식탐이 강하다. 그는 중얼거렸다. 걱정 마, 티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까. …물론, 이 귀여운 모습을 조금 더 감상한 다음에. 그의 벽안이 장난기로 반짝였다. 토리노의 평화로운 오후는, 앞으로 한동안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